마카오 도박 여행기 도박생각말고 그냥 재미삼아 놀다온다는 기분으로 가시길 패가망신합니다
아름다운 도박의도시 마카오가 400년이넘는 포르투갈의 지배를 벗어나
중국에 돌아온건 1999년 12월 20일
당시 마카오의 상황은 전체 크기가 종로구만 한 작은 도시지만 유네스코 지정 문화제 25곳이 몰려있는 문화도시이지만
포르투갈의 지배상황에서 치안이 그다지 강하지 않아서
인구 55만명정도 ...그중 갱이 1만명이나 되는 홍콩느와르 영화 실사판 인 상황이었다
거리곳곳에서 살인이 벌어지기 일쑤였고
삼합회 계파간의 전쟁으로 인해 총격전이 끊이질 않았다
1997년 5월 4일 오후 3시쯤. 마카오 시내에 있는 리스보아(Lisboa)호텔 앞. 고급 승용차 곁으로 두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오토바이에 탄 청년 2명은 7.62㎜ 중국제 반자동권총을 꺼내기 무섭게 9발을 난사, 승용차에 있던 3명 모두를 죽이고 달아났다.
이날 살해된 3명은 당시 홍콩 삼합회(三合會)의 최대 파벌 중 하나인 14K의 중간 보스들.
이 중 한 명인 섹윙쳉(당시 37세)은 차세대 두목으로 꼽히던 거물.
한 달 전인 4월 17일 마카오를 근거로 한 우온록(和安樂·일명 수방)파의 보스인 람푸이창(44) 저격살해사건을 배후 조종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날 사건은 람푸이창 사건에 대한 우온록파의 보복인 셈이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경과한 10월 20일. 마카오 시내에서 차량으로 10분쯤 떨어진 타이파(Taipa)섬의 하얏트 리젠시호텔 밖에서 14K파 소속 갱 2명이 총을 맞고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이어 26일 새벽에는 같은 14K파의 다른 파벌 두목인 량꿔시융(梁口雄·40)이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5발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 이 일주일 동안에만 3명의 갱이 살해됐고 1997년 들어 10개월 동안 24명의 조직폭력배가 목숨을 잃었다
. 마카오 경찰은 2건의 총격 살해사건에 대해 “같은 14K파 소속의 라이벌 파벌 간에 카지노 이권과 고리대금업을
둘러싼 분쟁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당시 마카오는 곳곳에서 살인사건이 난무하고
호텔이나 여관 침대 밑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갱들은 권총 이외에 기관총과 시한폭탄,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1998년에는 삼합회가 불법 카지노 영업 단속을 펴는 마카오 경찰청장과 정보국장, 담당반장 등이 탄 차량을 상대로 리모컨으로 폭탄을 터뜨려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하는 공권력 정면 도전사태까지 벌어진다
홍콩 느와르물의 실사판 마카오
그리고 드디어 중국에 반환되는 1999년 12월 20일이지나고
중국 공산당이 가장먼저한일은
중무장한 인민해방군 6000명을 조용히 마카오로 내려보낸거였다
인구55만명인 마카오에 6000명의 중무장한 군인들이 깔리고
삼합회 처럼보이거나 갱단처럼 보이는놈들을 다잡아들이기 시작하고
잡아들인놈중 고위급들은 잡아서 바로옆의 중국 주해시로 끌고가 공개적으로 총살 시켜버린다
얼마뒤 마카오에서 설치던 1만명이 넘는 조직폭력배들은 전부 자취를 감추고만다
실제 반환 직전인 1999년에는 37건에 달하던 살인사건이 반환 다음해인 2000년에는 단 한 건에 이를 만큼 치안이 안정됐다
현재 마카오는 치안이 엄청나게 좋은 도시중 하나로 꼽힌다
모두 중국 인민해방군의 존재 때문
현재 인민해방군은 마카오의 타이파섬과 마카오 시내에 모두 600여명, 인근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 400여명 등 1000여명이 주둔 중이다.
갱들은 허약한 경찰은 우습게 알아도 인민해방군은 무서워한다
마카오 주둔 인민해방군은 사단장급인 소장(少將)이 현지 사령관을 맡고 있으며, 유사시 광저우(廣州) 군구와 협조하는 정예군 ㄷㄷㄷ
그리고 중요한것은 공권력에 도전할 경우 즉석에서 사형을 할 정도로 엄격한 중국의 법 집행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과 마카오 간 헌법인 마카오 기본법에는 ‘사회 혼란을 야기시킨 자는 인민재판에 회부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돼 있다”
며 “이는 갱이나 불법조직을 최고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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